사순절 40일의 여정 (31~35일차)
제목 ; 문제해결의 방법 (31일 차)
1) 사도신경
2) 찬송 ; 94장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3) 본문 ; 마태복음 26장 57~75절
57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58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59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60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61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62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3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64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5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66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67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68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69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본문]
어느 지역이나 시내 곳곳에는 미용실이 있습니다, 화려한 수상경력을 현수막으로 만들어 홍보하기도 합니다.
실내 인테리어 좋고 훌륭한 다지이너들이 많아지니 가격이 놀랄 정도로 비쌉니다.
한 두 달에 한번 가는것도 만만치 않은 금액입니다. 그렇다고 안갈 수는 없습니다, 실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껴보겠다고 가위를 드는 순간 오랜만에 바가지 머리 구경하게 됩니다. 실력이 없으면 전문가를 찾아가야 합니다.
예수니께서 잡히시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재판을 받습니다. 신성모독을 이유로 사형을 강행하려는 시도에 제자들은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합니다. 이에 베드로는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다는 말에 대해 계속적으로 부인하고 저주
까지 퍼 붓습니다. 예수를 팔았던 가룟유다는 사형까지 예상하지 못했는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후회합니다.
베드로도 가룟유다도 문제에 직면합니다. 그리고 나름의 방법과 태도로 그 문제에 반응합니다.
베드로는 닭이 울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펑펑 웁니다.
실수한 말을 되도리려 사람들을 찾기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의 눈물을 쏟습니다.
유다는 이게 아니지 싶으니 해결을 위해 먼저 사람을 찾아갑니다. 그것도 대제사장을 찾아갑니다.
받았던 은도 들고 갑니다. 그러나 권세 있는 사람을 찾아도 돈다발 들고 갔어도, 해결은 커녕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결과를 맞게 됩니다.
문제는 언제나 발생합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양심에 찔려 자책과 후회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상한 마음을 가지고 누구에게 어떻게 나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어렵고 속상하고 답답할 때
전문인을 찾고, 응원해줄 사람을 찾고, 돈을 찾습니다. 모두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선순위는 아닙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 그의 말씀을 떠올리는 것, 후회가 아닌 회개를, 아쉬움이 아닌 돌이킴이 먼저
입니다.
4) 기도 ; 인생에서 마주하는 문제와 실수 앞에서 주저말고 예수님을 가장
먼저 찾는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5) 주기도문.
제목 ; 하나님을 바라보자 (32일 차)
1) 사도신경
2) 찬송 ; 150장 (갈보리 산 위에 )
3) 본문 ; 마태복음 27장 11~26절
11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15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19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20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본문]
태아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손톱보다 작았던 생명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기하게도 커집니다.
커질 뿐만 아니라 신체 기관이 생겨납니다. 그렇게 딱 10개월을 있습니다. 영원히 지내는 공간이 아닙니다.
좋다고 더 있다가는 위험해집니다. 태아는 틀림없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또한 세상에 사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누구나 인생이 마치는 날에는 틀림없이 하늘나라의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고발로 총독 빌라도 앞에 예수님이 서 있습니다. 빌라도는 이 사건의 전모를 이미 파악한
상태입니다. 종교인들의 시기심으로 발생한 것임을 이미 파악했습니다. 그렇다면 판결은 매우 분명해집니다.
무죄를 선언하고 예수님을 풀어주든지, 무고죄로 종교인들을 잡아 들여 집행하든지 양자택일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습니다, 유월절 특별 사면 카드를 꺼내들지만 이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질질 끄는가? 로마는 민란과 조세제도에 대해 엄격했습니다. 이 두 항목을 가지고 총독 직책을 평가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풀어주면 민란이 일어날 것을 걱정합니다.
즉 자기관리, 자기안전, 자기 평화, 자기 유익이 깨지는 것이 걱정입니다. 그러니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손을 씻으면서 책임 회피를 합니다. 이 땅의 문제가 그 어떤 것보다도 크게 보인 까닭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에 있어서 먹을 것, 마실것, 입을 것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내고, 쌓고, 모으는 것에 얼마나 많이 빠져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큰 집으로 바꾸기
더 좋은 차로 바꾸기, 더 비 싼 것으로 바꾸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시선을 땅에서 하늘로 바꾸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꽃길을 선택하기 보다 예수님께서 생명과 맞바꾸신 십자가의 좁은 길을 선택할 때 입니다.
세상 너머의 천국 소망을 붙잡을 때입니다.
4) 기도 ; 한번뿐인 인생의 시간을 살아가는 동안 영원한 하늘의 시간을
준비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5) 주기도문.
제목 ; 구원의 감격과 체험 (33일 차)
1) 사도신경
2) 찬송 ; 265장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3) 본문 ; 출애굽기 12장 1~4절, 11~14절
1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2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3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취할찌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4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11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12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13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14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본문]
한국 영화 최초로 천만관객을 돌파한 영화는 [실미도] 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흥미진진한 영화입니다.
특수부대 31명을 조직하여 북파를 준비합니다. 3개월 만에 인간병기로 훈련되고 , 4개월 째 실전에 투입되기 직전
명령이 철회됩니다. 3년 이상의 시간을 한없이 기다리지만 ' 하나' 가 없었기에 결국 무산됩니다.
모든 지옥 훈련을 받으며 준비를 마쳤고, 남은 것은 하나였습니다. 상관의 명령 ' 그 하나 ' 가 있어야 완성될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을 앞두고 새로운 월력체계를 도입합니다. 마치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전후로 B.C와 A.D로
나뉘듯 출애굽 사건이 역사의 전환점이 됨을 알립니다. 애굽에 속해 있는 동안은 미래가 없고, 끌려 다녔고, 희망과
소망이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시간은 이제 모두 청산하고, 하나님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자고 하십니다. 유월절 음식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싣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하게 먹으라고 명합니다. 새로운 목적지를 행해서 출발하려는 순례자의 전형적인 모습
입니다. 새로운 월력체계를 도입하고, 떠날 모든 준비가 마쳤습니다. 남은 것은 하나입니다. 어린양의 그 피가 집의
문에 있어야 합니다. 그 피로 인해 재앙이 넘어감니다. 유월절의 많은 준비됨이 있었지만, 어린양의 피로 인해
비로소 완성이 됩니다.
구원의 감격과 그 체험은 새 시작을 알리는 인생의 전환점 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분명하게 구분이 됩니다. 흑 과 백이 구분되듯 합니다. 생각과 태도와 가치관의 변화가 구원을
증거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나의 어떤 공로도 아닌 오직 예수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로 인함입니다.
어둠이 빛으로, 두려움이 평안함으로, 묶임이 풀림으로 변화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할 때
입니다.
4) 기도 ; 나를 대신해 죽으시고 흘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인해 참 하나님의
백성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5) 주기도문.
제목 ; 영혼의 호흡 (34일 차)
1) 사도신경
2) 찬송 ; 384장 (나의 갈길 다가도록 )
3) 본문 ; 시편 116편 1~2절 , 12~19절
1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2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12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3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15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16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17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8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
19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곧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키리로다 할렐루야
[본문]
신체에는 많은 기관이 있습니다. 얼굴에는 눈 코 귀 들이 있습니다, 보는 기능 때문에 눈이 있고, 냄새 맡는
기능 때문에 코가 있고, 듣는 기능 때문에 귀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기능과 그 역활이 사람에게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 기관들이 왜 필요했던 것입니까? 특별히 입이 왜
필요했습니까? 그 입을 가지고 무엇을 하길 원하셨던 것입니까?
시인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구원체험을 간증합니다. 원문상으로 " 내가 그를 사랑하는 도다" 라는
첫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는 분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내 입맛대로 응답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늘 귀 기울여 들으시고, 공감하시고, 반응하시기에 평생 기도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영혼을 건지는 분이라는 뚜렷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환란과 슬픔은 육체적, 상황적, 관계적 일들로 일어납니다. 그러면 보통 형편을 바꿔달라고 할 텐데 영혼을
건져달라고 합니다. 형편의 문제는 평생 일어날 것인데 이것들의 근본적인 문제가 영혼에 달려 있기 때문에
여호와께 부탁합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부탁합니다. 내가 결코 해결할 수 없기에 부탁합니다.
세상에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가장 슁ㄴ 문제라고도 합니다. 성도이 입장에서는 돈으로 해결할
문제만큼 위험한 문제가 있을까 싶습니다. 기도가 필요없는 문제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문제의 답이기에
평생에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흔히 대화라고도 합니다. 때문에 평생에 '그분과의 대화' '그분과의 관계' , '그분과의 교제', '그분과의 동행을 결코 멈추지 안겠습니다. 라는 고백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4) 기도 ; 영혼의 주인이신 하나님! 모든 문제 가운데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내 영혼을 건져 주옵소서.
5) 주기도문.
제목 ; 함께 먹는 기쁨 (35일 차)
1) 사도신경
2) 찬송 ; 227장 (주 앞에 성찬 받기 위하여 )
3) 본문 ; 고린도 전서 11장 23~26절
23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본문]
도시락을 싸서 다니던 시절에는 달걀, 소시지, 동그랑땡, 같은 반찬을 가져오면 최고 였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둘러 앉아 도시락을 까서 같이 먹습니다. 그런데 좋은 반찬을 혼자 먹겠다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가서 몰래 먹는 아이, 2교시 끝나고 먹겠다고 반찬만 먹는 아이 등 다양합니다.
못 사는 아이들은 김치나 콩자반을 싸오는데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점심에 모여 도시락을 함께 열었을 때
실망감과 배신감은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교병을 나눠먹고, 문인방과 설주에 피를 발라 죽음의 재앙을 피했습니다.
바로 이 유월절이 의미를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유월절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 듯, 어린양의 피로 구원하신 것을 기념하며 성만찬을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속하신 사랑이 얼마나 크고 값진 것인지를 기억하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에서 드러나실 것을
기대하며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성만찬을 칭찬할 수 없다고 합니다.
누구는 배불리 취하도록 먹고 마시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발생하면서 갈등과 분쟁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생명 주심을 기억하고 감사한느 자리가 불평과 원망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화목제물을 나눠먹듯이 하나의 공동체 됨을 확인해야 할 자리가 분열과 나뉨의 자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던 첫 번째 사랑의 자리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신앙의 모습입니다.
성만찬을 할 때마다 그분께서 나를 위하여 당신의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린 사실, 목숨을 주신 사실, 새 생명을
주신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성만찬을 합니다. 그리하여 이 구원이 누군가에게 흘러가야 하고, 그 생명의 빛을
이웃에게 갚으리라 결단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자리가 돼야
합니다.
4) 기도 ;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때에 , 생명의 감격을 누리고
생명을 흘려보내는 삶 되게 하옵소서.
5) 주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