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잔 운동의 신학과 실천
선교적 관점에서, 모든 신학은 동시대의 기독교 공 동체가 직면한 사회문화적 상황에서 교회와 세상의 관계에 관한 해석학적 숙고와 행동에의 요청을 담아낸 ‘상황화 신학’(contextual theology)이다. 데이비 드 보쉬(David Bosch)는 1세기 교회가 직면한 이방인 선교라는 비상 상황에 의해 신학이 형성되었기에, 마틴 켈러(Martin Kähler)가 주장하듯이, “선교는 신 학의 어머니”라고 역설한다. 따라서, 모든 신학은 선교적 차원을 내포한다. 성서신학, 조직신학(기독 교 윤리학), 역사신학, 실천신학이라는 전통적인 신학의 사중양식(fourfold pattern)은 교회를 섬길 뿐 아니 라, 세상을 위한 신학으로써 선교적 차원(missional dimension)을 담지한다.
로잔 신학(Lausanne Theology)의 형성은 1960년대 서 구교회가 직면한 서구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연관 성을 띤다. 유럽의 거대한 사상적 변혁기로 알려진 이 시기는, 68 문화혁명과 포스트모던 세계관을 대 표하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출현, 프랑스 예술과 문학을 지배한 무신론적 실존주의/해체주의와 상 대주의적 다원주의의 부상, 선교 현장에서 태동한 종교 다원주의, 그리고 북미의 히피 운동과 베트남 전쟁과 같은 냉전 시대의 대립과 갈등으로 대표된다. 이런 철학적 이념과 종교적·정치적 사상은 서 구 기독교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서구 선교의 대상인 비서구 신생교회에도 사회문화적인 차 원뿐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격변기에 기독교 선교의 주요 관심사인 영 혼 구원, 복음 전파, 교회 개척 등의 선교적 사안은 주요 관심에서 밀려나고, 대신 복음의 사회정치적· 경제적 차원에 관한 관심이 급격하게 부상했다. 남 미의 해방신학, 유럽의 정치 신학, 북미의 흑인 신 학, 아프리카 토착화 신학, 아시아 신학(인도의 종교 다 원주의 등), 한국의 민중신학과 토착화 신학 등이 당 시의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여 일어난 신학운동의 주류를 이루었다.
1960년대 들어서면서 복음주의 진영의 결집이 이 루어진 중요한 계기는 에큐메니컬 진영의 자유주 의 신학의 부상에 기인한 바가 크다. 1952년 독일 빌링겐에서 열린 IMC 대회에서 제시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개념은 1960년대 들어 에큐메니컬 진영에 의해 급진적 해석으로 제기되면서, 기독 교 선교가 사회 구원을 넘어 정치적 혁명과 혼합 주의로 향하게 되어 성경해석과 교회론에 혼란을 초래했다. 특히 1961년 제3회 세계교회협의회 뉴델리 총회에서 국제선교협의회(IMC)가 선교와 전도위원회 (CWME)로 통합되었는데, 그 일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의 의도와는 달 리 에큐메니컬 진영의 선교와 복음 전도의 동력 은 점차 약해졌다. 이러한 흐름은 1968년 WCC 제4차 웁살라 총회에서 복음의 세속화와 인간화라 는 주장을 낳았으며, 1973년 CWME 대회에서 ‘오 을의 구원’을 주창하며 서구 선교의 모라토리움 (moratorium), 즉 해외에 선교사를 보내는 시대는 종 식 되었고 선교사들은 현지에서 철수하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WCC와 복음주의 진영의 신학적 차이로 인한 갈등 은 소위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 ‘복음 전도와 사회 적 책임’ 간의 신학적·선교학적 이분법을 초래했고, 이런 흐름은 한국 신학계에도 논쟁과 갈등의 요인 을 제공했다. 또한, 제삼세계가 서구 식민 지배에서 독립하면서 반서구 사상의 영향으로 인해 외국 선 교사를 배척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에 대해 복음주의 지도자인 빌리 그래함, 존 스토트, 그리고 칼 헨 리는 에큐메니컬 진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구 신학의 급진적인 성향에 대한 염려를 표명하며, 미 국과 영국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세계 복음주의 진영을 규합하는 선교대회를 조직하여 교회의 복음화 과업을 수행할 것을 논의했다. 글로벌 사회문화와 이념과 사상적인 측면에서 격 동의 시대로 불리는 1960년대는 복음주의 로잔 신 학이 태동한 배경이 되었고, 그 핵심은 복음의 본 질에 근거한 선교적 차원을 담아낸다.
특히, 제1차 로잔대회 문서인 로잔언약(Lausanne Covenant)은 당 시의 교회와 선교에 영향을 미친 세속적이며 인본 주의적인 사상과 이념을 표명하는 자유주의 신학과 선교 신학에 대한 복음주의 신학과 선교의 본 질적 성격을 표명했다. 초대교회의 신학적 성찰과 실천이 세상과의 선교적 대면이라는 비상 상황에 서 나왔듯이, 로잔 운동의 신학과 실천도 20세기, 특히 1960년대 이후의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형성되었다. 제1차 로잔대회는 복음주의자들의 선교역량을 결 집하고 세계 복음화의 과업을 완수하려는 목적으로 빌리 그래함과 존 스토트(John Stott) 등의 복음주의 지도자의 주도하에 열렸고, 복음주의 선교와 신 학에 중대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것은, 로잔대회 이후 복음주의 선교 운동의 신학적 근간을 제공한 로잔언약, 세계 복음화를 위한 로잔위원회(LCWE), 그리고 지상대위임령(마 28:18~20)을 종족 중심으로 접근한 선교학 개념인 ‘미전도 종족 집단’(unreached group)이다. 로잔 신학 위원장을 역임한 영국 구약성서 학자 크 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Wright)는 로잔언약의 특 징을 간결하고도 포괄적이고 깊고도 단순하며 넓이와 균형을 유지하는 신학문서라고 말한다.
로잔 운동이 형성한 세 개의 대회 문서가 공통으로 담아 내는 주요 특징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 성경의 궁극성과 규범성,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유일성과 보편성을 중심으로 전개한 세계 복음화이다. 이런 관점에서, 로잔 운동은 선교운동이고 신학운동이 다. 로잔언약은 다른 세 개의 대회 문서의 기초로 서 불변하는 성경의 진리를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 실에 적용한다는 점에서 예언자적인 특성을 띤다. 로잔언약 제1항(하나님의 목적)은 선교적 교회론의 핵 심을 담고 있다. 그것은, 창조주, 구속주, 심판주가 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언급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 백성을 부르시고 세상으로 보내신다고 고 백한다. 선교적 하나님께서 선교적 백성인 교회를 세상으로 보내신다는 진술은 모든 신학의 선교적 차원을 복음과 교회와 세상이라는 삼중관계로 표 연한다. 즉 교회는 복음(하나님)과 세상(문화) 사이에 서 보냄을 받은 하나님 백성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살아낸다. 로잔언약 제2항(성경의 권위와 능력)은 성경이 모든 사 람을 위한 복음의 좋은 소식이라고 진술한다.
제4 차 로잔대회의 비전 가운데 첫 번째 항목이 바로 이 진술과 일치한다. 오늘날 로잔 운동이 전개하 는 선교적 성경 읽기와 선교적 해석학은 정경 66 권 전체를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거대서사)로 간주하며, 교회의 삶 실천으로 연결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성육신, 십자가, 부활, 승천, 재림)를 중심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의 삶에 종말론적으로 구현된다. 로잔 신학 문서에서 가장 논쟁적 이슈는 복음 전 도와 사회적 책임 간의 우선성(priority) 문제이다. 이 논쟁적 이슈는 에큐메니컬 신학의 강조점인 사 회 구원 및 사회정의와 복음주의 신학의 강조점인 영혼 구원 및 복음 전도 간의 갈등을 유발했다.로 잔언약 15개 항 가운데 제4항(복음 전도의 본질)은 복 음 전도를 “그리스도께 인격적으로 나아와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그리스도를 구원자와 주로 선포하는 것”이라고 진술한다. 즉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구원에 대한 교리를 나타낸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자의 태도와 삶을 ‘제자도’ 및 ‘공 동체’와 연관하여 진술한다는 점에서, 복음 전도는 말(word)과 행위(action)를 통합하는 총체적 차원을 내포한다. 이어지는 제5항(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은 “복음 전도와 사회참여를 상반된 것으로 여겼던 것을 뉘우 치며” 이 둘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부분이라 고 회개의 고백을 통해 확언한다.
더 나아가 구원 은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총체적’으로 수 행하도록 우리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진술한다. 특이한 점은, 제6항(교회와 복음 전도)이 삼위일체 하 나님의 보내심에 관하여 언급하며 복음 전도의 우선성을 진술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제6항은 복 음의 총체성을 표명하는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 을 온 세상에 전파”해야 한다는 로잔 운동의 표어를 재차 확언한다. 존 스토트는 로잔 신학 위원장으로서 로잔언약을 설계했는데, 복음의 총체성을 내포하는 그의 신학 적 견해가 복음 전도의 이론적 우선성을 유지하면 서도 사회적 책임과의 균형 잡힌 견해를 로잔언약에 제시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복음주의 신학의 발 전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 사실, 존 스토트는 로잔 대회가 열리기 전, 남미 복음주의자인 르네 빠디 야의 초청으로 아르헨티나를 방문하여 서구식민 주의와 제국주의가 초래한 남미 대륙의 억압적인 상황을 목격하고 선교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사 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했다. 그는 로잔 대회 주제 강연자로 남미 복음주의자인 르네 빠디 야와 사무엘 에스코바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미국 복음주의자들과의 논의를 통해 복음 전도 일색의 로잔언약 항목 가운데 복음 전도의 본질(4항)에 이어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5항)을 넣을 수 있었다. 마닐라 선언 2부 4항(복음과 사회적 책임)은 로잔언약의 기조를 이어 복음 전도의 우선성을 주장하면서 복 된 소식과 선한 행위의 불가결한 관계를 예언자적인 어조로 확언한다. 로잔언약과 마닐라 선언이 진 술 하는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 간의 수렴과 통합 은 케이프타운 서약에서 더욱 폭넓게 다루어졌다.
특히 복음 전도에 관한 강조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급격하게 변화하는 글로벌 상황 가운데 부상하는 다양한 신학적 이슈(신학교육, 창조 세계 돌봄, 디아스포라, 일 터 사역, 난민, 화해, 공공신학, 다원주의, 예술 등)를 선교적 차원에서 담아낸다. 제3차 케이프타운 로잔대회 문서인 케이프타운 서 약의 입안자인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 간의 우선성 문제를 불식하기 위해 복 음의 좋은 소식이며 복음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성(ultimacy)을 언급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그리 스도 중심의 선교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성과 구원의 유일성과 보편성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창조 세계의 모든 악과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 간의 이분법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보냄을 받은 교회의 선교적 삶이라는 상황에서 십 자가로 인해 해소된다. 로잔 운동이 제시한 세계 복음화를 위한 신학적 의 제는 20세기 중후반 이래, 복음주의 선교학을 선도 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미전도 종족, 10/40 창문 지역, 상황화 신학, 복음주의 종교 신학, 총체적 선교, 성경 번역, 선교적 교회론, 선교 적 성경 해석학, 공공신학, 디아스포라 선교학, 일 터 선교, BAM, 창조 세계 돌봄 등의 선교학적 이슈 는 본질적으로 신학이 하나님의 선교 현장에서 형 성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제4차 로잔대회의 문서인 서울 선언(Seoul Statement) 은 제1~3차 로잔대회의 신학적 기조에 부합하여 인공지능과 디지털 사회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불 변하는 복음을 증언하고 살아내는 교회의 정체성을 성경 이야기를 통해 진술한다. 서울 선언은 삼 위일체 하나님의 성경 이야기에서 교회의 위치를 확인하고 세상을 향한 소명을 확증한다. 또한, 서울 선언은 복음주의 해석학, 신학적 인간론,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성경적·신학적 접근, 그리고 선교와 제자도를 폭넓게 다룬다. 역사적으로 기독교 선교 운동이 담아내는 상황적이고 실천적인 관점에서, 로잔 신학은 하나님의 말 씀에 근거한 기독교 신앙을 역사로부터 분리된 형 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신학으로 변질시키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창조, 타락, 구속, 새 창조라는 하 나님의 이야기와 드라마에 참여하는 교회가 추구해야 할 성경적 세계관을 중심으로 전개한다. 이러 한 특징은 로잔 운동의 대회 문서뿐 아니라, 로잔 주제연구 보고서(LOP)와 로잔 글로벌 분석(LGA)을 포함하여 모든 문서에 명료하게 드러난다. 로잔언약과 마닐라 선언의 역사적·신학적 연속선상에서 케이프타운 서약은 성경의 내러티브 속성과 정 체성을 공고히 하며 세상이 제기하는 의제를 풀어 나간다. 케이프타운 서약은 성경에 나타난 신학적인 명제들에 접근하기 전에 먼저 역사 속에 나타나는 계시의 본질을 성경 내러티브를 통해 읽어낸다. 성 경은 하나님의 선교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규정하며 교회의 기억과 소 망을 형성하고 복음 증거의 내용과 삶의 방식을 지 배 한다. 지난 50년 동안 로잔 신학이 담아낸 복음의 본질을 보냄을 받은 세상 한가운데서 구현하려는 노력이 제4차 로잔대회를 통해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를 변혁하는 결실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